전체 글9 조선의 왕과 그를 다룬 이야기 : 14대 왕 선조 1. 도망가! 또 도망가! 선조 1552년 음력 11월 11일 한성에서 태어난 선조는 명종의 조카로 왕실의 적통은 아니었으나 명종에게 왕위를 이을 친자식이 없었으므로 14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선조는 사림 출신의 인사들을 대거 등용하였는데 정계를 주도하던 사림들끼리 분열이 발생하여 붕당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눠진 붕당 간의 갈등이 심화되며 1589년에는 정여립의 모반 고변을 핑계 삼아 동인을 축출한 기축옥사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1592년에는 일본의 침입으로 발생한 임진왜란이 7년간 이어지며 국토가 황폐화되고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었습니다. 특히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개성,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피난하여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궁과 관청이 습격당하는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2024. 4. 9. 조선의 왕과 그를 다룬 이야기 : 11대 왕 중종 1. 이랬다저랬다 혼란의 정국, 중종 중종은 1488년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연산군과는 이복형제로 연산군의 폭정에 반발한 대신들의 추대로 19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자신을 추대한 반정 세력들의 위세에 눌려 중종은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조광조 등의 사림을 중용하였지만 지나치게 급진적이던 조광조의 개혁 정책은 기성 훈구파의 반발을 불러 기묘사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를 계기로 사림파가 몰락하고 다시 공신들의 세력이 부활할 조짐이 보이자 외척을 등용했는데 이는 또 훈구세력과 척신과의 권력다툼을 불러일으켜 불안정한 정국이 이어졌으며 왕권은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국내 정국의 혼란과 더불어 남쪽의 왜구, 북쪽의 여진족의 침탈이 잦아 1510년에는.. 2024. 4. 5. 조선의 왕과 그를 다룬 이야기 : 10대 왕 연산군 1. 복수할 거야! 연산군 성종의 맏아들인 연산군은 폐비 윤 씨의 아들로 1476년 태어났습니다. 후궁이 많았던 성종과 폐비 윤 씨의 사이는 원만하지 못해 성종은 결국 윤 씨를 폐하고 연산군은 정현왕후의 아들로 자랐고 왕세자의 자격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재위 4년인 1498년 연산군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핑계로 삼사에 속한 대간들을 죽이는 무오사화를 일으켜 사림 세력을 제거하였고, 이후 재위 10년인 1504년에는 폐비 윤 씨 사건을 주도했던 귀인 엄 씨와 정 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을 폭행하고 처형하는 갑자사화를 일으켜 훈구 세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이때 인수대비와도 크게 다퉈 인수대비는 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이미 죽은 한명회 등도 부관참시당했습니다. 두 사화를 통해 사림과 훈구 세.. 2024. 4. 4. 조선의 왕과 그를 다룬 이야기 : 9대 왕 성종 1. 태평성대를 이룬 왕, 성종 세조의 장남 의경 세자와 수빈 한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아버지 의경 세자가 요절하며 왕위 계승권은 작은 아버지인 예종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종마저 즉위 14개월 만에 요절하여 예종의 적장자인 제안 대군과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을 제치고 즉위하였습니다. 서열 3위에 불과했는데도 즉위할 수 있었던 까닭은 왕실 최고 어른이자 할머니인 정희왕후와 훈구파 대신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나,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서열을 뛰어넘은 즉위 과정으로 인해 정치적 입지는 매우 좁아 7년 동안 정희왕후 윤 씨가 수렴청정하였습니다. 성종 7년 친정을 시작한 이후로는 사림파를 적극 등용하여 훈구파를 견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숭유억불 정책을 철저히 시행하고, 경연을 되살리고, 을 완성.. 2024. 4. 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