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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조선의 왕과 그를 다룬 이야기 : 9대 왕 성종

by 하와나 2024. 4. 4.

동물을 사랑한 성종



1. 태평성대를 이룬 왕, 성종



세조의 장남 의경 세자와 수빈 한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아버지 의경 세자가 요절하며 왕위 계승권은 작은 아버지인 예종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종마저 즉위 14개월 만에 요절하여 예종의 적장자인 제안 대군과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을 제치고 즉위하였습니다.
서열 3위에 불과했는데도 즉위할 수 있었던 까닭은 왕실 최고 어른이자 할머니인 정희왕후와 훈구파 대신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나,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서열을 뛰어넘은 즉위 과정으로 인해 정치적 입지는 매우 좁아 7년 동안 정희왕후 윤 씨가 수렴청정하였습니다.

성종 7년 친정을 시작한 이후로는 사림파를 적극 등용하여 훈구파를 견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숭유억불 정책을 철저히 시행하고, 경연을 되살리고, <경국대전>을 완성, 반포하여 조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외적으로는 북방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북방 방비에 힘썼으며 명나라 및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국력을 크게 진작시키기도 하였으나 폐결핵과 천식을 비롯한 갖은 병증에 시달리다 39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승하하고 말았습니다.
능은 선릉이며, 현재 서울시 강남구에 2 계비 정현왕후와 함께 안장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모든 법제와 정비를 완성했다는 뜻을 담은 성종으로 묘호를 받았으며, 조선시대 사대부들 사이에서 세종과 더불어 성군으로 불렸습니다.

 


※ 수렴청정


어원은 남자인 신하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발을 내리고 정치를 듣는다'는 뜻으로, 나이 어린 왕이 즉위하여 아직 정치를 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 또는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등이 대리로 정치를 맡는 것을 말합니다.

 


※ 훈구파


혁명파 사대부를 계승한 세력으로서 세조의 왕위 찬탈에 협조한 공신 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절대 왕권을 숭상하는 귀족적 관료 학자를 말합니다.

 


※ 사림파


사림은 전원의 산림에서 유학을 공부하던 문인이나 학자를 뜻하는 말로 조선 중기 중앙 정계를 주도한 정치 세력을 말합니다.
고려 말 성리학자 길재가 은퇴 후 고향인 영남지방에서 후진 양성에 힘쓴 결과 제자가 많이 배출되어 조선 유학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훈구파에 대립하여 사림파라 불렸습니다.

 

 

 



2. 드라마 <한명회>

 


1994년에 방영된 KBS 대하사극으로 신봉승이 극본을 쓰고 김재형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한명회 역은 이덕화 배우가 맡았으며 세조~성종 시대 최고 권력을 누렸던 한명회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립니다.
한명회는 조선 전기 문신, 정치인이자 외척으로 호는 그 유명한 압구정의 압구입니다.
세조의 최측근이자 책사로 계유정난을 주도하여 수양대군을 왕으로 즉위시키는데 기여하였으며, 예종의 첫 번째 왕비인 장순왕후와 성종의 첫 번째 왕비인 공혜왕후의 아버지로 정권을 장악하고 막강한 권력을 누렸으나 자신의 정자인 압구정에 명나라 사신을 사사로이 불러 접대한 일로 탄핵당하여 삭탈관직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책략가의 대표 격인 이미지로 인해 많은 대중매체에서 그의 권력욕과 야심가로서의 면모를 매력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3. 영화 <어우동>

 


1985년 방기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장호 감독의 영화로 이보희와 안성기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기생 어우동과 그녀를 제거하려고 파견된 말 없는 자객과의 사랑 이야기를 그립니다.
조선 전기 시인, 서예가, 작가, 기생이자 무희였던 어우동은 본디 양반가 출신 여성이나 후사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기녀가 되었으며, 조선 성종 때 조정 고위 관료들이 연루된 성 스캔들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성종 11년인 1480년 어우동은 성 문란 행태로 의금부에 잡혀가 어우동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어 국문당했으나 대부분의 남성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여 죄가 면해지고 어우동은 결국 처형되었습니다.
부도를 어긴 여성의 대명사이며 조선 사회의 악녀 중 한사람으로 지탄받아 오다 최근에는 성리학적 도덕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택한 조선 사회의 시대적 희생양이라는 시각도 존재합니다.